넷플릭스의 그 많은 작품은 누가 번역할까?

202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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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그 많은 작품은 누가 번역할까?

글쓴이 : 송명진 한국노동공제회 사무국장


취미가 넷플릭스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베이식 요금제 9500원으로 할 일 없는 연휴가 꽉 찰 수 있고, 오징어 게임이나 더글로리 같이 안 보면 대화에 끼질 못하게 하는 작품들도 이 채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특이한 건 영화나 드라마 엔딩크레딧 뒤에 넷플릭스 자체의 크레딧이 한참이나 계속된다는 것이다.

 

제작국가의 언어 외에 영어, 중국어, 태국어 등 다양한 언어 자막이나 더빙과 함께 제공되기 때문인데, 보다 보면 수많은 작품을 우리나라 말로 또는 우리나라 작품을 여러 외국어로 번역하는 일들은 대체 누가 다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번역 업무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글로벌 OTT 업체들은 해외 진출에 있어 해당 국가에서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업체들과의 전략적 제휴와 함께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콘텐츠 현지화 전략을 추구하는데, 특히 그 국가의 언어로 자막이나 더빙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현지화의 핵심이다.

 

넷플릭스의 경우 자체의 전담팀을 두고 직접 번역가들을 구하기도 하나 대부분은 해당 국가 또는 글로벌 영상번역 전문기업들과 계약하고 기업들이 소규모 번역업체나 프리랜서들에게 재하청 또는 재재하청의 방식으로 일을 맡기고 있다. 번역 수요가 늘어나며 주요 물량을 독점하는 1차 밴더들 역시 글로벌 기업화되고 있는데, 한국기업으로 시작해 현재는 스웨덴에 지주회사를 두고 있는 ‘아이유노’는 34개 국가 3만 명의 프리랜서들에게 작업을 맡기며 세계 자막번역 시장의 15%를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번역 업무의 증가는 영상 분야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웹툰, 웹소설, 게임 등 한국의 문화콘텐츠들의 해외 소비가 늘면서 해당 분야에서의 번역 수요도 크게 확대되고 있다. 2020년 한국에서 외국어로 번역된 웹툰만 5,500여 개 수준이다. 수출하는 문화콘텐츠의 번역은 주로 한국어에 능통한 해당 국가의 원어민이나 그 지역에 오래 거주한 한국인들이 담당하고 있다.

 

증가하는 번역 업무 vs 줄어드는 번역료

 

글로벌 공룡 OTT 업체들의 출현과 국내 문화콘텐츠의 해외 진출 확대로 번역가들의 몸값도 올라가고 있을까? 여러 인터뷰 기사들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당사자들의 반응은 오히려 냉소에 가깝다. 영상번역의 경우 40분 내외의 드라마 1회당 번역료는 20~30만원이다. 한편 당 평균 2~3일이 걸려 한 달 내 쉬지 않고 일을 해도 월 수입이 300만원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이마저도 잘 받는 편에 속하고 이에 훨씬 못 미치는 사례들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번역일에 대한 수요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번역료가 시장에서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이유는 먼저 진입장벽을 낮춘 디지털 플랫폼의 등장이 큰 배경이 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번역 알바를 검색하면 수십 개의 번역업체와 크몽, 숨고 등 여러 프리랜서 재능마켓 플랫폼들이 나오는데, 영어나 외국어에 자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플랫폼을 통해 손쉽게 번역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 번역 노동 또한 ‘플랫폼 노동화’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취미나 부업으로 번역을 하는 사람들을 포함해 인력공급이 대폭 늘어나며 전체 번역시장의 작업단가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또한, 적은 수입으로 인해 생계가 어려운 번역 프리랜서들이 과도하게 작업량을 늘리거나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나면서 번역 품질이 저하되기도 하고 나아가 양질의 번역전문가가 체계적으로 양성될 수 있는 시스템의 형성까지 어려워진다. 더구나 플랫폼 이용시 부과되는 10~20%의 수수료를 비롯해 더 많은 일감을 받기 위해 홍보하는 광고비까지 지출해 실질 소득은 훨씬 더 낮아진다.

 

AI로 대체? 저평가되는 번역 노동 가치

 

여기에 AI 기술을 활용한 번역의 확산은 번역가들의 산업 내 지위를 약화한다. 번역작업은 1차 번역업체로부터 AI 번역 전문업체의 초벌 번역을 거쳐 2차 밴더나 프리랜서들의 수정과 검수에 이르는 과정으로 변화되고 있다. 하지만 기계번역 성능이 높아졌다고는 해도 아직은 오역이나 어색한 표현이 많아 인간의 세심한 손길을 거쳐야 하는 번역의 수고로움이 여전한 경우가 다반사이고 특히 말의 맛을 제대로 살려야 하는 문학작품이나 영상물 등의 문화콘텐츠 분야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도 ‘얼마든지 기계에 의해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직업’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인간 번역 노동의 시장가치가 저평가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일의 수요는 넘쳐도 일하는 환경은 열악하다는 것이 번역 프리랜서들의 전반적인 인식이다.

고소득 프리랜서는 소수이고 대부분은 정규직 노동자 평균임금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소득수준이며 지속적인 일거리가 보장되지도 않는다. 시간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다. 납기 마감시한이 늘 촉박하게 주어지기 때문에 번역을 직업으로 택한 가장 큰 이유중 하나인 일-생활 균형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도 많다.

 

프리랜서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불공정의 경험도 흔한 것으로 나타난다. 변역료 체불은 물론이고, 번역단가가 10년 넘게 오르지 않는데도 에이전시의 눈 밖에 날까 정당한 인상 요구조차 어려워한다.

 

사회안전망의 보호도 빈약하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지역가입자로 가입하게 되어 일반 직장인보다 훨씬 비싼 보험료를 내고, 그 실무도 세무사에 맡기거나 개인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 더구나 기업이 부담하는 퇴직연금 등의 노후 보호장치도 없고, 은행 대출이나 국공립 어린이집 신청 시 어려움이 크다.

 

이 같은 사정에도 번역 프리랜서 공급자가 증가하는 이유는 언급한 대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시장 진입이 쉽고, 다양한 콘텐츠 산업의 해외 진출과 수입이 확대되어 일감이 늘어나는 것 외에도 양질의 안정적 일자리 부족으로 N잡을 통해 수입을 보충할 수밖에 없거나 경력단절 이후 재취업이 어려운 여성들이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의 부족이 큰 이유일 것이다. 번역가의 70% 이상이 여성이라는 점은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떼어 놓고 보긴 어렵다.

 

번역 프리랜서에 대한 사회적 보호 어떻게 마련할까

 

번역가들과 업계의 전문가들은 번역시장을 개선하기 위해 프리랜서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도 바깥에 놓인 프리랜서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의 확충, 공정계약과 정당한 대우를 위한 제도의 정비와 정책적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 최저임금과 같이 최저보수 기준 도입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재능마켓형 플랫폼 시장의 확대로 부수입을 위해서나 경력을 쌓기 위해 단가를 낮추어서라도 일감을 확보하려는 초보자 프리랜서들이 늘며 보수가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 작업에 대한 보수의 최저 기준을 두는 것은 초보자들도 번역수입만으로 기본 생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방편이자 번역의 품질을 높이고 번역가들의 전문성도 강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일 수 있다.

 

한편 번역 작업의 특성상 다른 번역자들과 교류할 기회가 부족해, 불합리와 부당함을 집단의 문제로 인식하고 공동의 대응을 추구할 수 있는 계기나 조건이 없었다. 이러한 점이 번역시장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방치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동해왔다. 당사자들의 참여와 공동의 행동 없이 제도적 개선이나 실질적인 보호를 기대하긴 어렵다. 프리랜서 당사자들의 조직화를 위한 노력과 함께 노동조합이나 노동공제회, 노동자지원기구 등‘제도 내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202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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